선운산은 577년(위덕왕 24)에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선운사(禪雲寺)를 창건하면서 불리던 이름으로, 선운이란 말은 신선이 구름 속에서 참선을 한다는 뜻이고, 도솔은 미륵부처가 있는 도솔천궁을 의미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선운산의 선은 ‘봉선한다’, ‘참선한다’는 뜻의 선(禪)인데, 선(仙)으로도 쓰인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진흥왕의 국사인 ‘의운국사(義雲國師)가 청해서 선운사를 창건했다’라고 기록하여 창건자나 창건 연대를 승리자인 신라의 역사로 고쳤다. 선운산의 유래에 대해 잘못된 견해가 있다. 예컨대, 선운사에서는 미륵부처가 있는 도솔천을 의미해서 도솔산(兜率山)으로 부른다거나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왕비 ‘도솔’과 공주 ‘중애’와 함께 진흥굴에서 수도하며, 왕비의 이름을 따서 도솔산으로 지었다고 하나 이는 속설에 불과하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도 선운산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고려사(高麗史)』악지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선운산가」와 「선운산곡」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백제 유민들이 부르던 다섯 가지 노래는 「선운산가」·「지리산가」·「방등산가」·「정읍사」·「무등산가」이다. 그 중 「선운산가」는 장사현[지금의 무장면과 해리면 지역] 사람이 군대를 갔다가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다. 따라서 산 전체를 지칭할 때는 『대동여지도』와 『고려사』악지의 「선운산곡」에 근거해서 선운산으로 표기하고, 나머지 봉우리들은 선운산의 주봉을 도솔봉 또는 수리봉, 상봉은 경수봉·청룡봉·개이빨봉·천마봉 등으로 불러야 한다. 조선 성종 연간에는 선운산의 형세가 1만 필의 말들이 뛰어오르는 모습이며, 임금과 신하들이 잔치를 벌이는 모습이고 또 만물의 근원에 돌아간 신선이 모이는 형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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