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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한국149대명산

화왕산

by nhd 2022.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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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번호 : 140 화왕산


높이 : 757 m
위치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일대
등재여부 : 산림청, 블랙야크, 한국의산하, 월간산
공원구분 : 군립공원
화왕산은 선사시대 화산으로 지금 3개의 못(용지)은 화산의 분화구가 있으며, 이못과 전설이 있는 창녕 조(曺)씨의 득성비가 있고 정상부 둘레에는 화왕산성(사적64호)이 있으며 성내는 잡목이 없는 억새로 이루어진 약 5만 6천여 평의 초원이 펼쳐져 있어 사시사철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다.

화왕산은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 여름이면 억새초원, 가을에는 황금빛 억새물결, 겨울에는 설경이 유명하다. 특히 봄에는 진달래 군락 5, 6곳에 수십만평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창녕읍 동쪽의 화왕산 정상(757m)에 축조되어 있는 성(城)이다. 이 성은 남북 두 봉우리를 포함하여 둘레가 2,600m의 석성으로 성을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가야시대의 성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창녕의 진산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실과 창녕뿐만 아니라 영산, 현풍을 포용하는 성이라는 점에서 군사적 의미가 큰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지에 있었던 산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200년간 계속된 평화 속에서는 거의 실용가치를 잃어버리게 되어 옛 성으로 기억되고 말았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이 순식간에 대로를 따라 북상하게 되자 화왕산성의 군사적 이용이 새로이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의병 근거지가 바로 화왕산성이었다. 곽재우 장군이 이 성을 거점으로 하여 왜군이 진주를 통해 운봉으로 진출하려 한 길을 차단하고, 왜군의 경상남도 침입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이 화왕산성의 지세에 힘입은 바 컸다.
 
그 밖에도 화왕산성의 지리적 이점은 임진왜란 중 이 성에 근거하였던 밀양부사 이영이 수성장으로 있었을 당시 부산에 있었던 왜적의 진영에 돌진하여 사납게 부수거나 야격을 가하거나 혹은 미격하여 왜군의 목을 벤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창녕읍 동쪽의 화왕산 정상(757m)에 축조되어 있는 성(城)이다.

이 성은 남북 두 봉우리를 포함하여 둘레가 2,600m의 석성으로 성을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가야시대의 성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창녕의 진산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실과 창녕뿐만 아니라 영산, 현풍을 포용하는 성이라는 점에서 군사적 의미가 큰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지에 있었던 산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200년간 계속된 평화 속에서는 거의 실용가치를 잃어버리게 되어 옛 성으로 기억되고 말았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이 순식간에 대로를 따라 북상하게 되자 화왕산성의 군사적 이용이 새로이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의병 근거지가 바로 화왕산성이었다. 곽재우 장군이 이 성을 거점으로 하여 왜군이 진주를 통해 운봉으로 진출하려한 길을 차단하고, 왜군의 경상남도 침입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이 화왕산성의 지세에 힘입은바 컸다.
 
그 밖에도 화왕산성의 지리적 이점은 임진왜란중 이 성에 근거하였던 밀양부사 이영이 수성장으로 있었을 당시 부산에 있었던 왜적의 진영에 돌진하여 사납게 부수거나 야격을 가하거나 혹은 미격하여 왜군의 목을 벤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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