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8경
경포대
소개
‘경포대’는 강릉을 대표하는 명승지 중 하나로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46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포대’는 고려시대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누각으로 정면 6칸, 측면 5칸, 기둥 32주로 구성되어 있다.
관광가이드
‘경포대’ 주변에는 ‘경포해수욕장’과 ‘경호포’가 주변관광지로 위치하고 있으며, ‘경포해수욕장’ 일대는 특히 해가 바뀌는 1월 1일에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일출을 보기 위해 방문하므로 미리 숙박지를 예약해 두기를 바란다. 또한, ‘경포호’와 인접한 ‘초당동’의 ‘초당두부’는 강릉의 별미로 강릉 관광객에게 적극 추천하는 음식으로 꼭 먹어보길 바란다.
관광팁
‘경포대’는 고려 충숙왕 13년 당시 강원도 안렴사 ‘박숙’이 현 ‘방해정’ 뒷산 ‘인월사’ 옛터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후에는 현 위치로 옮겨지었다고 전해지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경포대’에는 율곡이이 선생이 10세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하여 ‘숙종’의 ‘어제시’ 및 유명한 문장가로 알려진 강릉부사 ‘조하망’의 ‘상량문’ 등 여러 명사의 글들이 있다. 또한, ‘경포대’는 비교적 높은 장소에 지어져 ‘경포호수’와 ‘경포대해수욕장’을 조망할 수 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경포8경’과 ‘경포월삼’은 천하의 장관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경포대’에서는 노송에 둘러싸인 고요한 호수를 바라볼 수 있으며, 동해의 드넓은 바다 풍경과 시원한 풍광은 보는 이를 하여금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경포대’는 정면 다섯 칸 측면 5칸 규모인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익공 양식에 2고주 7량 가구이며, ‘연등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포대’ 주변 관광지로는 오래된 소나무 숲과 벚나무가 어우러진 ‘경포호’가 위치하고 있으며, ‘경포호’를 동해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해안사주’는 ‘경포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낙산사
금강산, 설악산과 함께 관동 3대 명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오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낙산사는 관음보살이 항상 머무는 곳을 이르는 보타낙가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역대로 지위와 신분을 떠나 관음진신을 친견하려는 참배객들의 간절한 발원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특히 낙산사는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풍광과 부처님 진신사리가 출현한 공중사리탑, 보물로 지정된 건칠관음보살좌상, 동양 최대의 해수관음상, 천수관음상 칠관음상 등 모든 관음상이 봉안된 보타전, 창건주 의상대사의 유물이 봉안된 의상기념관 등 숱한 성보문화재를 갖추고 있어 관음성지이자 천년고찰로서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낙산사는 지난 2005년 4월 대형 산불로 인해 많은 당우가 소실되고,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경관이 크게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낙산사를 아끼고 사랑해주신 국민들과 불자님들의 성원에 힘입어 이제 새롭게 천 년 고찰 불사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낙산사의 성보문화재
1. 원통보전
원통보전은 낙산사의 중심법당으로서 낙산사가 관음성지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통보전은 원통전 혹은 관음전이라고 불리며, 관세음보살님을 주불로 봉안합니다.
2. 건칠관음보살상(보물 제1362호)
낙산사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다. 이 관음보살상은 표현 수법으로 보아 고려 후반의 전통 양식을 바탕으로 한 조선 초기의 작품임을 짐작케 해줍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좋고 특히 얼굴 표정이 빼어날 뿐 아니라 머리에 쓰고 있는 보관은 고대 이래의 형식에 원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보관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3. 칠층석탑(보물 제499호)
원통보전 앞에 세워진 조선 시대 석탑으로 현재 보물 제4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낙산사는 조선 세조 때 중창되었는데 이 탑도 그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탑은 비록 부분적으로 파손된 곳이 있으나 대체적으로는 탑의 상륜 부분까지 비교적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조선 시대 불탑 연구에 훌륭한 자료가 됩니다.
4. 원장(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4호)
원통보전 주위에는 그 둘레를 방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조선 시대 초기의 담장인 원장이 있습니다. 축조된 시기는 세조가 절을 중건할 때 처음 쌓았다고 전합니다. 이 원장은 법당을 둘러싼 성역 공간임을 구분하면서 공간 조형물로서의 효과도 아울러 겸비하고 있습늬다.
5. 보타전
원통보전, 해수관음상과 더불어 낙산사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음성지임을 상징하는 불전입니다. 불전 내부에는 7관음, 32응신, 1500관음상을 봉안하였습니다.
6. 해수관음상
낙산사 성보 가운데 일반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해수관음상입니다. 그래서 굳이 신자가 아니더라도 동해에 왔다가 낙산사를 찾는 여행객들이면 빠짐없이 들러 참배하는 것이 하나의 정해진 코스가 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7. 공중사리탑(보물 제1723호)
공중사리탑은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으로서 현재 보물 제172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005년 대형산불로 낙산사가 소실될 때 공중사리탑도 손상을 입어 2006년 해체 보수하던 중 부처님 진신사리를 비롯한 사리장엄구가 출현하였습니다. 조선 시대 중기인 1692년에 석경스님 등이 대원을 발하여 세웠다고 전합니다.
8. 동종
조선 시대인 1469년에 낙산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세조를 위해 그의 아들인 예종이 만들게 한 범종입니다. 2005년 대형산불로 소실된 것을 2006년 10월에 복원하여 현재 종각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조선 시대 범종 가운데 16세기 이전에 조성된 드문 예 가운데 하나로, 당대의 범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9. 홍예문(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
홍예문은 1467년에 축조되었다고 전하며, 그 위의 누각은 1963년 10월에 지은 것이나, 2005년 대형 산불로 소실되고 2006년에 다시 지었습니다. 축조될 당시에 강원도에는 26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세조의 뜻에 따라 각 고을에서 석재 하나씩을 내어 쌓았기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10. 의상대(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8호)
의상대는 의상스님이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 때 이곳에 이르러 산세를 살핀 곳이며 의상스님의 좌선 수행처라고 전합니다. 홍련암으로 가는 길 해안 언덕위에 있는데, 주위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면서 시인 묵객이 즐겨 찾는 곳이었으며, 지금도 낙산사를 찾으면 반드시 둘러 보는 곳이 되었습니다.
11. 사천왕문
사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찰을 지키면서 사부대중을 돕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사천왕을 모신 문입니다. 1950년 6.25전쟁과 2005년 대형 산불의 재난 속에서도 이 문과 사천왕상은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12. 홍련암(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6호)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본 절인 낙산사를 창건하기 앞서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장소이며 낙산사의 모태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하여 당시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서부터 멀리 이곳까지 온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파랑새를 만났는데, 파랑새가 석굴 속으로 들어가므로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이윽고 7일 후 바다위에 붉은 연꽃, 곧 홍련이 솟아나더니 그 위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친견한 후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홍련암이라 이름을 짓고, 파랑새가 사라진 굴을 관음굴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죽서루 : 관동 8경 중 유일하게 바다가 아닌 강가에 있다
오십천 절벽 위에 자리한 죽서루(보물)는 우리나라 대표누각이다.조선태종 3년(1403)에 삼척부사 김효손이 옛 터에 중창하였으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 십 차례에 걸쳐 중수되거나 단청되었으며 증축되었다. 죽서루는 그 하층이 17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9개는 자연석에 세웠으며, 8개는 석초(石礎)위에 건립하였다는 건축사적 특징 및 아름다움이 있으며, 그 상층에는 20개의 기둥에 팔작지붕이다.
청간정
청간천 하구 언덕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정자로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중종 15년(1520)에 군수 최청이 고쳐 세웠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고종 21년(1884) 갑신정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28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누각형식 정자이다. 추녀 밑에 걸린 ‘청간정(淸澗亭)’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망양정
망양정(望洋亭)은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1 바닷가에 있는 정자이다. 원래의 망양정은 현재의 위치가 아닌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에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숙종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편액을 내려줄만큼 관동팔경 중에서도 제일 경치가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누가 처음에 지었는지 알 수 없으나, 고려 말기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성종 2년(1471)에 평해군수 채신보(蔡申保)가 현종산 기슭으로 옮겨놓았다. 중종 12년(1517)에는 비바람으로 정자가 파손되었다. 그 이듬해 안렴사(按廉使) 윤희인(尹希人)이 울진군수 김세우(金世瑀)와 조력하여 중수하였다. 그 후 선조 23년(1590)에 평해군수 고경조(高敬祖)가 중수하였으며, 1860년(철종 11)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근남면 산포리 둔산동으로 이전하였다. 그 후 망양정이 오래되어 퇴폐된 것을 1957년에 울진군 및 경상북도와 울진교육청의 주선으로 보수하였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 작업을 하다가, 경상북도 북부권 유교문화권 문화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 완전 해체하고 새로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이 정자는 예로부터 해돋이와 달구경 명소로 유명하다. 「관동별곡(關東別曲)」의 저자인 송강(松江) 정철(鄭澈),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그리고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등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이 정자에 올라 감회에 젖은 글을 남겼다.
월송정 : 1963년 울진군이 경상북도로 편입되어 지금은 경북에 있다.
월송정(越松亭)은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362-2(월송정로 517)에 있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정자이다. 예로부터 월송정 주변의 흰백사장과 소나무숲으로 유명하여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고성의 청간정(淸澗亭),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울진의 망양정(望洋亭)과 더불어 관동팔경(關東八景) 중의 하나로 꼽혀왔다. 1326년(충숙왕 13)에 존무사(存撫使) 박숙(朴淑)이 처음 건립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 관찰사 박원종(朴元宗:1467~1510)에 의해 중건되었다. 경치가 빼어나 고려시대 이래 월송정에 관한 많은 시문이 지어졌으며 화가들에 의해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졌다.
월송정(越松亭)은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362-2(월송정로 517)에 있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정자이다. 예로부터 월송정 주변의 흰백사장과 소나무숲으로 유명하여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고성의 청간정(淸澗亭),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울진의 망양정(望洋亭)과 더불어 관동팔경(關東八景) 중의 하나로 꼽혀왔다.
월송정은 1326년(충숙왕 13)에 존무사(存撫使) 박숙(朴淑)이 처음 세웠다고 전한다. 1349년(충정왕 1) 이곡(李穀:1298~1351)이 관동 지역을 유람하며 지은 「동유기(東遊記)」에 의하면 “평해군청에서 5리 되는 곳에 이르면 소나무 만 그루가 서 있고 그 가운데에 월송정(越松亭)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었는데, 이는 사선(四仙)이 유람하다가 우연히 이곳을 지나갔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라고 하여 월송정이라는 정자명의 유래에 대해 밝히고 있다. 한편 옛 군지(郡誌)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 때 술랑(述郞)·영랑(永郞)·안상(安祥)·남석(南石) 등 네 화랑이 달밤에 솔밭에서 놀았다고 하여 월송정(月松亭)이라 하였다 하며, 월국(越國)에서 소나무 묘목을 가져다 심었다고 하여 월송(越松)이라고 하였다 한다. 이로 보아 신라시대부터 화랑들이 유람하던 절경지이고, 고려 이후 수많은 문객들이 월송정의 풍광을 노래하였다.
월송정을 읊은 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안축(安軸:1282~1348)의 「월송정 시에 차운하다[次越松亭詩韻]」인데, 다음과 같다. 그의 문집 『근재집(謹齋集)』에 실려 있다.
총석정
총석정(叢石亭)은 강원도 통천군 고저읍 총석리 바닷가에 있는 누정이다.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한 곳으로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하였다. 현재 북한 지역에 속해 있다. 총석정이라는 정자 명은 바다 위에 빽빽이 솟아 있는 돌기둥[叢石] 위에 세워진 정자라는 뜻이다. 지리적으로 현무암 용암이 오랜 세월 비바람과 파도에 부딪혀 6각형 혹은 8각형 등의 여러 가지 모양의 돌기둥을 이룬 주상절리 위에 세워진 정자이다. 신라의 술랑(述郞)·남랑(南郞)·영랑(永郞)·안상랑(安詳郞)의 선도(仙徒)들이 총석정에 와서 놀아 이곳의 네 개의 바위기둥을 사선봉(四仙峰)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수많은 문객이 총석정의 절경을 찬양하는 시문을 많이 남겼으며, 수많은 화가에 의해서 그림으로도 그려졌다.
삼일포
삼일포는 삼일호라고도 불리며, 고성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36개의 기묘한 봉우리가 있으며, 가운데 사선도라고 하는 바위섬이 있다.
신라의 국선인 영랑, 술랑, 안상, 남석행 등 4명이 경치에 홀려 삼일동안 놀았다는 고사에서 삼일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사선도에는 정자가 있어 사전정이라고 하였다.
댓글